돌로미테 여행기 #2. 그 곳에 야생화가 있었다, 피아자 산장

2014. 8. 18. 13:47알프스 Alps/돌로미테 Dolomite

2014년 7월 4일 금요일
오늘의 일정: 코르티나 담페초 > 치마반체 고개 > 피아자 산장 > 치마반체 고개 > 코르티나 담페초

  호텔 방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내 눈을 간지럽혔다. 간지러운 느낌에 눈을 떠보니 이미 아침 여섯 시. 잠시 멍하니 침대에 걸쳐 앉아 여기가 어딘지 고민해보았다. 그래, 여기는 폭우가 온다던 코르티나 담페초다. 일기 예보대로라면 오늘부터 뇌우를 동반한 비바람이 이곳을 강타할 것이다. 벌떡 일어나 베란다로 나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밖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방을 나서자마자 서늘한 아침 공기가 내 몸을 감싸는 게 바로 느껴졌고, 이내 청량한 공기가 내 폐 가득 들어찼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이 뚜렷이 대조를 이루고 있는 모습은 오늘 날씨가 맑을 거라는 신호를 주고 있었다. 호우주의보가 있었던 거 치고는 상당히 좋은 징조였다.

  나랑 같은 방을 쓰게 된 김주호 대리님을 억지로 깨웠다. 자, 날씨 좀 보세요. 하늘이 우리를 돕고 있습니다. 우리는 비 소식에, 아니 우리가 오는 이 시기에 맞춰 호우주의보가 내려진 불운에 안타까워하며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 지역, 특히 산악지역에서는 예측이 틀리기가 일쑤다. 다행히 오늘 아침 날씨는 맑았다. 날씨가 좋으니 덩달아 기분까지 좋아졌다. 나야 괜찮지만 이곳을 처음 방문하는 분들은 날씨 때문에 제대로 구경도 못할 경우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부디 끝나는 날까지 날씨가 우리를 돕기를.

  버스를 타고 우리가 이동한 곳은 치마반체 고개. 이곳이 우리의 트레킹 출발 지점이었다. 다 같이 모여 트레킹 전 준비운동 겸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우리를 태워다준 버스 기사님은 '얘네 뭐 하는 거지.' 라는 표정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 준비운동


  올라가는 길 초반은 아주 평탄하고 쉬운 길이었다. 산 골짜기를 향해 숲을 가로질러 가는 길. 종종 시냇물도 통과하고, 숲 사이로 난 길을 지나며 모두들 '오늘 트레킹 별거 아니네.'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맞는 말이었다. 뒤로 가면 아주 조금 가파른 구간이 나오는데 이 구간도 그리 길지는 않으니 오를만했다. 몇 분이 땀을 비 오듯 흘렸을 뿐이었다.

  이번 팀처럼 여러 사람을 모객해서 오는 경우, 산을 오르는 속도가 제각각이라 평균에 맞춰가기 마련이다. 이번에도 탱크처럼 강인한 체력을 가진 분들이 계셔서 그 분들의 질주본능을 붙들어 잡아야 했다. 그런 분들께서 제일 자주 하시는 질문. "일로 가면 거기 나오지?"


▲ 울창한 숲길


▲ 숲길은 어느덧 사라지고 슬슬 오르막이 시작된다.


▲ 심한 오르막 구간. 막판 스퍼트! 힘내세요!


  오르막 구간이 나오자, 팀은 이분화 되었다. 선두 그룹과 다음 그룹의 속도 차이가 심했다. 하지만 김주호 대리님이 제일 뒤에서 쫓아오며 일행을 잘 챙기고 있어 줬기에 크게 걱정은 안되었다. 오르막이 끝나는 지점에 돌들 사이로 시원한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갈림길이 하나 나왔다. 좌우로 나뉘어 있는 길인데, 우측으로 가면 발란드로 산장 밑의 넓은 초지로 가는 길이고 발란드로 산장을 지나 계속 가면 피아자 산장이 나온다. 좌측으로 가면 피아자 산장에서 크로다 로사 산을 둘러서 비엘라 산장, 세네스 산장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랑 합류한다. 우리는 좌측으로 갔다. 약간 돌아가기는 하지만 어차피 피아자 산장으로 이어져 있는 길이고, 무엇보다 이곳으로 가다 보면 야생화가 만개한 초지를 볼 수 있다. 여태까지 올라오며 야생화 구경을 제대로 못 했던 일행들은 사방 천지에 펼쳐져 있는 야생화를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 오르막을 다오르고 나면 아름다운 야생화 밭이 펼쳐진다.


▲ 야생화 밭에서 즐거운 시간


▲ 야생화 밭 너머로 보이는 설산


▲ 돌로미테 지역의 트레킹 이정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18번이라는 뜻.


▲ 트레킹 복장의 정석!


  피아자 산장에서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했다. 벌써 하루 일정의 반이 지난 셈이었다. 이제 남은 건 하산. 발란드로 산장을 지나 지금은 폐쇄되었지만 이전에 차도로 쓰이던 길을 따라 내려 갈 예정이었다. 우리의 트레킹 일정은 많이 남아 있었고, 첫 날부터 무리하면 안 되기에 아쉬움을 뒤로 한채 피아자 산장을 떠났다. 피아자 산장에서 발란드로 산장까지는 차가 다닐 수 있는 평지 길이었다. 오른쪽으로는 광장같이 넓게 펼쳐진 초지가 있었고 그 너머로 크리스탈로, 크로다 로사 산군이 눈에 뒤덮인 채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발란드로 산장에 가면 크리스탈로 산군을 정면으로 바라다보는 멋진 전망이 있다. 발란드로 산장에서 기념사진을 몇 번 찍고 가슴 한 아름 이곳의 기억을 안고서 우리는 발걸음을 옮겼다.


▲ 피아자 산장에서 발란드로 산장 가는 길


▲ 피아자 산장에서 발란드로 산장 가는 길. 멀리 크리스탈로 산군이 살짝 보인다.


▲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돌로미테 소


▲ 돌로미테 소. 딸랑 딸랑


▲ 돌로미테 ㅅ. 김주호 대리. 그의 뒤로 먹구름이 보이는 건 분명 착시 현상이리라.